벤처경영특강에 오신걸 환영합니다...자의누리 홈으로...
자의누리 사이버클래스 사이트로...벤처경영특강 차례보기...이장우 교수 홈페이지로...자의누리 사이버특강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본 특강에 질의사항이 있으시면 E'mail을 보내주십시오.
이장우 교수
(한국벤처협회
자문위원)

경북대학교
경영학과

E'mail

line.gif (1835 bytes)


....................1월 2주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과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 사례

   정문술 사장과 미래산업

   미래산업의 개황

   미래산업은 1983년 창업되었으며, 현재 반도체 설비단지인 충남 천안 제 2공단에 위치고 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완제품을 최종검사하는 장치(주제품: Test Handler)를 생산하는 연구개발형 중소기업이다. 회사의 창립은 1983년에 이루어졌으나 상품판매가 개시된 것은 1990년이다.

   이 회사는 6년여의 개발기간 동안 연속된 실패를 극복하고 1991년 이후 본격적인 판매활동을 수행하여 1994년에는 227억원의 매출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과 함께 매출액 순이익률 22%라는 뛰어난 수익성을 나타내었다. 1995년 이 회사의 예상 매출액은 380억원으로 전년대비 67%의 성장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고 있는 IC 테스트 핸들러라는 반도체 검사장치는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소요량의 60%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에게도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진출은 지난 몇년 사이 반도체 검사장치를 생산하는 세계 5대 기업중 일본의 3개사를 제외한 2개 회사가 도산한 사실에 비추어 매우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현재 221명의 종업원중 22%인 49명이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하고 있으며 58%인 128명이 생산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학력분포에 있어 이공계 대학원 출신이 9명이며 대졸 출신은 19명이다.

<표 > 미래산업의 주요 재무상황

(단위:백만원)


'91 '92 '93 '94 '95(예상)
매 출 액

자 본 금

(자기자본)

총 자 산

당기순이익

3,501

500

(626)

1,360

126

3,065

1,000

(1,240)

3,151

140

6,465

1,250

(2,203)

8,504

721

22,739

1,250

(6,423)

16,110

4,968

38,000

3,500

( - )

-

6,500


   18년 공무원 생활 끝에 사업에 뛰어든 정문술사장

   정문술사장은 1938년생으로 원광대학교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대학졸업 이듬해인 1962년부터 줄곧 공무원 생활(행정직)을 하였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예기치 못하게 공직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당시 그의 직위는 부이사관급에 해당되었다.

   18년 공무원 생활을 청산한 그는 사업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업에 대한 아무런 구상이나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 생각만이 서있을 뿐 그저 망막하기만 하였다.

   "나는 사회에서 초년생이다. 공무원이 할 수 있는 눈먼 사업은 없다. 따라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길, 피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막연한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수집하기 위해 2년간을 자료수집과 사업구상을 하는 데 소요하였다. 그는 후에 이 시기를 '공직생활의 티를 벗는 시기', '남에게 늘 받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주는 것을 배우는 시기' 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여 퇴직금의 상당분을 날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 우연히 시그네틱 코리아라는 반도체 생산업체를 알게 되었고, 반도체 산업이 유망한 산업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들에 주목하였다. 비록 이 장비들이 선진국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첨단기계이지만 노력만 한다면 중소기업으로서 개발이 가능하고 부가가치도 높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1983년 46세의 나이로 미래산업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이름은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록 자신의 전공이나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반도체산업의 유망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오랜 행정경험을 믿고 창업을 하였다. 그는 기술축적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고 판단하고 공고출신인 4명의 기술자를 고용하여 기술개발에 돌입하였다.

   기술개발의 실패와 성공

   (반도체 조립기구의 제작)

   정사장이 4명의 기술자와 처음 시작한 제품개발은 반도체 조립시 사용되는 '리드프레임 매가진'이라는 기구였다. 이것은 비록 첨단장비는 아니었지만 워낙 열악한 국내기술 때문에 전량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었다. 그는 기술개발을 위하여 먼저 일본에서 기술자를 데리고 왔다. 이때 사용한 개발전략은 "한단계 높은 기술로써 한단계 낮은 부분에 진출한다"이었다. 즉 수준 높은 기술을 축적하되 실제 사업은 이 보다 한단계 낮은 기술분야에서 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술자의 도움으로 출발한 첫번째 기술개발은 특허출원에 성공하는 등 기술적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사업적으로도 매출액 5억원에 1억5천만원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반도체 검사장치에의 도전)

   돈을 조금 벌게 되고 자신감을 갖게 되자 자동검사장치에 눈을 돌렸다.이때까지만 하여도 생산된 반도체 소자들은 품질검사를 위해 대부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육안으로 검사하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고 있었다. 따라서 자동으로 검사하는 장비는 비록 첨단기술이 필요하지만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막대한 수요가 예상되었다.

   정사장은 이러한 첨단검사장치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이번에는 1985년 미국의 물리학 박사를 초빙하여 디에스코리아(주)라는 韓美합작의 별도 법인을 설립하였다. 미국 기술자로부터 관련기술을 이전받고자 하였으나, 미국인 기술자는 핵심기술 이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기술자를 외국에서 따로 불러 기술개발을 하는 상태였다. 이때부터 한국 기술자들의 어깨너머 공부가 시작되었고 한창 개발이 진행중이던 1988-89년에는 매출의 무려 80-90%라는 개발비가 투여되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은 정사장은 기술독립을 선언하고 미국인 박사와 결별하여 디에스코리아(주)를 미래산업과 흡수합병하고 내국법인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이러한 기술개발 과정에서 조립기구의 경우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많은 비용을 발생시켰다. 그는 주위로부터 모두 18억원이라는 거금을 개인적으로 끌어들여 충당하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기술장벽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고 자금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더우기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시제품은 이미지 프로세서와 머쉰 비전의 결함으로 육안으로 검사하는 것보다 더 느리다는 결정적인 결점을 가졌다. 사실 육안검사보다 빠르게 하기 위하여는 지금까지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그 결과 이 기술개발은 사업화에 완전히 실패하였다.

   (좌절과 재도전)

   기술개발 실패의 결과 이미 투자된 18억원은 갚아야 할 부채로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계속되는 빚독촉에 절망하고 지친 정사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 실제로 자살할 것을 여러번 계획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시련 속에서 등산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등산을 하던중 "비록 실패는 했지만,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가 대단한데---"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고 한다. 그는 사업적으로는 실패한 노하우를 한단계 낮은 곳에 투입해서 다시 시작하여 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비록 실패한 것이지만, 그 가치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손에 보석을 쥐고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는 곧바로 한단계 아래의 기술인 반도체검사기계의 개발에 돌입하였다. 8명의 엔지니어가 밤을 세워가며 1개월 동안 개발한 결과 성공적인 시제품이 탄생하였다. 어렵게 초청한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들이 직접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인정하여 시험작동에 들어갔으나, 15일후 시험작동중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문제를 해결하여 드디어 3대분을 계약하였다.

   점차 계약물량이 늘어나자 이제는 공장과 생산인원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생산기술의 미흡으로 기계에서 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적극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했으나, 회사로서는 결과적으로 조립기술을 쌓게 되었다.

   (행운의 도래)

   한편 반도체 산업안에는 장비의 무기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즉 일본기업들이 한국기업들을 경제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장비의 공급조건을 까다롭게 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삼성을 비롯한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사업적 위협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별로 중시하지 않던 미래산업의 기술개발력에 주목하고 메모리 분야의 검사장치를 개발할 것을 주문하였다. IC 테스트 핸들러라고 불리는 이 검사장치는 반도체 제조공정 중 최종 공정에서 디바이스의 양/부를 검사한 후 그 판정 결과에 따라 등급별로 분류하여 주는 시스템으로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비이다. 기존의 것이 낱개의 검사를 위한 것임에 반하여 한꺼번에 32개의 소자를 검사하는 장치이다.

   미래산업은 지금까지 실패를 통하여 축적해 온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성공적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하였다. 이러한 기술개발력은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같은 제품을 개발하려 했던 다른 기업들이 모두 실패했음을 상기하였을 때 높히 평가할 만하다. 또한 이 장비는 외국과의 합작투자나 기술 제휴없이 순수 국내 기술로 세계수준에 올려 놓은 민족기술로 제작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현재 미래산업은 반도체 제조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22개 기업중 매출액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문술사장은 이러한 성공의 원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기술개발하는 재미로, 기술개발비를 벌기 위해서, 자사의 기술자가 훌륭한 기술자로 성장하는데서 기쁨을 찾았고 오직 연구개발과 기술개발에 투자한 결과 이러한 좋은 결과가 왔다. 권투에서 착실히 맞혀 나가는 사람이 KO승을 거두는 것이다."

   또한 그는 기술개발 인력의 확보와 유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초기에는 대기업 근무도 했고, 사회를 조금 아는 사람들을 확보하려 했다. 서울공대 1명과 한양공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박사학위를 가진 기술자도 2명이나 있다.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한 일류학교 출신은 도중에 진로를 바꾸거나 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을 육성하려 했다. 현재 49명 의 연구개발 인력중 5-6명이 주축인데 이들은 모두 공고출신이다. 이들은 선천적인 기질과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일류학교에서 많이 공부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소질을 찾고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술자를 양성하는 기쁨으로, 기술 초년생을 데리다 가르치면서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으로 이 사업을 한다. 돈은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 돈을 먼저 생각했다면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사업하는 사장으로 불리기 보다는 기술개발학교 교장선생이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창의성을 촉발하는 리더쉽

   숱한 고난과 실패 속에서 기술개발에 최우선적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미래산업은 완전 국산기술로 독자적인 기계/기구 설계능력을 보유(CAD-CAM, 시뮬레이션 기술의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전자 S/W (REAL TIME OS, 제어프로그램, DEBUGGING, OPERATOR INTERFACE, 통신, 멀티미디어)의 자립을 이루었고, 전자 H/W 설계 제작 기술, VISUAL, AIR-BEARING, 정밀 온도제어, 각종 특수센서 제작 및 활용기술 등 복합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특허 및 실용신안, 의장등록 등 27건의 공업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30여건이 출연중이다. 이러한 기술력은 대외적으로 인정받아 1990년에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산업기술개발상'을 받았으며 'IR52 장영실상' 등을 비롯해 여섯 차례의 수상 경력이 있다. 1993년에는 국산 신기술 인정마크인 'KT 마크'를 획득하였다.

   이러한 미래산업의 저력과 성장의 근간에는 정문술 사장의 리더쉽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의 리더쉽은 창업 10년만인 1993년말 공장을 신축하여 천안으로 이전할 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대표이사는 이전을 앞두고 각자 이전을 준비하라고만 하고 아무말 없이 먼저 천안에 집을 구해 내려왔다. 그 결과 개인 사정이 있는 1명을 제외한 136명 전원이 수도권인 부천에서 지방인 천안으로 함께 이주하였다. 신축 공장은 대지 3,030 평, 연건평 1,448 평으로 건설 및 시설투자비가 40억 원이 투자된 최신형 빌딩이며, 건물 안에는 연구소, 사무실, 공장은 물론, 직원들의 숙소, 샤워실, 각종 운동시설, 노래방까지 갖춘 중소기업으로서는 보기 드문 전천후 복합 빌딩이다. 그러나 공장이주에 대한 구성원들의 전폭적 동의는 이러한 환경조건 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회사와의 공동운명체적 일체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사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말이 그렇지 딸린 가족들도 있는데 생활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만큼 우리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 주는데는 무슨 별다른 재주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이 회사는 너희들의 것이다', '회사가 번 돈은 내가 가져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세계 일류의 기업이 확실히 돼가고 있다' 라는 비전을 심어주고, 번 것을 나누어 주고 그리고 내가 솔선수범하는 것만이 내가 취한 행동이고 방법이다."

   또한 정사장은 사원들을 믿어주는 자세를 강조한다. 그는 의심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까지 회사공금의 은행예치 상황을 전혀 모를 정도로 사원들을 믿어주었는데 단 한건의 금융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연구개발 요원들 역시 전적으로 믿어준다고 한다. 그들에게 연구테마의 설정, 소요경비의 산정 및 집행 등에 완전 자율권과 재량권을 주고 있다. 또한 실패하는 연구원에 대하여도 문책보다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사장은 실패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직원을 믿어 버린다. 의심하는 것처럼 바보짓이 없다. 의심스러워도 믿어주어 버리면 두번 다시 그러지 않는다. 계속 믿어주면 두번은 실수해도 세번까지는 가지 않는다. 믿어주는 데도 세번 네번 배신하는 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이와 같은 정사장의 리더쉽과 자세에는 다음과 같은 경영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첫째, 공개념으로의 기업상을 확립한다. 경영자의 자녀, 형제자매 등 친인척을 일체 배제한 경영으로 사원채용에 있어서도 철저한 능력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재무구조를 언제라도 공개하고 있으며 특히 사내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재무구조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둘째, 공과대학 학장의 자세로 운영한다. 이러한 철학은 "어린 기술자를 데리다가 가르쳐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사업을 한다. 결국 나는 기술자를 기르고, 기술개발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한다." 는 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셋째, 기술개발이 제일의 목표이다. 이윤추구는 부수적이므로 연구개발시 경제성 개념을 버릴 것을 독려하여 연구원의 연구의욕 고취에 주력한다. 연구개발비를 벌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네째, 개발 실패시에도 책임을 묻지 않고 귀중한 자산으로 인정한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연구진들을 위로한다. 그러면 실패한 연구원은 다음부터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한다. 개발 실패에 따른 비용을 손비로 생각하지 않고, 이것이 비록 금전적으로는 없어졌어도 어떤 형태로든 무형의 노하우로 축적되어 언젠가는 발휘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자산으로 본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하도 어려워 죽을려고 생각이 들었을 때 거듭된 실패가 아까워 실패에 들어간 돈, 그 많은 자산을 왜 버리고 죽느냐는 생각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설 수 있었다. 실패는 값진 것이다."

   기술개발과 행동주의 경영으로 세계 일류를 꿈꾼다

   미래산업은 현재 보다 고도화된 첨단기술을 제품화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이러한 첨단분야에서는 선진국의 기술이전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 기업들은 사실상 기술이전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산업은 갈수록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사장은 끊임없는 기술개발만이 살 길이라는 기술력 중시의 경영으로써 앞으로의 난관을 정면돌파하려 하고 있다.

   또한 미래산업은 조직의 급성장과 규모확대에 따라 내부관리상의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직을 이끌고 활성화시킬 수 있었으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보다 체계적인 관리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사장은 경영자가 직접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행동주의 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아직 손수 운전을 하고 있으며, 월급은 상무와 똑 같이 받고 있다. 자동차 유지비도 회사비용이 아닌 개인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이면 직원들이 따라올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직원간 믿음과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사원들을 철저한 신뢰하고 있다. 그는 정신교육이나 처벌 강압보다는 소극적으로 믿고 기다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따라 왠만한 잡음이나 비리에도 문책보다는 스스로 시정하도록 기다린다고 한다.

   정사장은 이와 같은 기술중시 경영과 행동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미래산업을 세계일류의 반도체 장비업체로 키울 것을 꿈꾸고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지와 방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는 남이 하는 방식으로 따라하지 않는다. 같이 줄을 서서는 이길 자신이 없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는다. 미련스럽게 보일 만큼 우직한 방법으로, 正道로 가는 것이 시간은 오래 걸려도 결국 이긴다. 나는 많은 경우 통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남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승부를 건다."

 

[벤처기업특강]의 질의사항은 antonio@bh.kyungpook.ac.kr 으로 보내주십시오.

강의진행관련 건의사항은 [벤처경영특강 SM[Sector Manager]
정준권 jung@centerworld.com 으로 보내주십시오.
자의누리 홈으로...자의누리 사이버특강에 오신걸 환영합니다...이장우 교수 홈사이트로...벤처경영특강 차례보기...자의누리 사이버클래스로...